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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흔적'' 눈물 흘렸는데…결국 ''친일파 글씨''였다 ~정밀 자문단 조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
독립운동가 박원근 지사의 유족(80대 아들)이 평생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유일한 흔적이라 믿고 눈물 흘렸던 붓글씨가, 조사 결과 이름이 같았던 친일 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글씨로 밝혀진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1:45)
국립중앙박물관의 정밀 자문단 조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과 고증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동명이인으로 인한 오인과 진실
  • 유족의 참담한 배경: 박원근 지사는 조국 독립에 헌신했으나 해방 후 보도연맹 회원으로 몰려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0:25). 이 때문에 가족들은 연좌제와 보복의 두려움 속에 유품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0:25).
  • 친일파의 본명: 친일파 박중양은 일제강점기 거물급 친일 반민족행위자입니다 (0:56). 그는 일본 유학 시절이었던 20대까지 '박원근'이라는 본명을 사용하다가, 조선으로 돌아온 후 이름을 '박중양'으로 개명했습니다 (1:45). 이로 인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글씨가 독립운동가 박원근 지사의 것으로 오인되는 소동이 빚어졌습니다 (0:47).
친일파 박중양의 글씨로 판정된 결정적 근거 3가지
국립중앙박물관 자문단이 국내외 자료를 분석하여 '친일파 박중양의 것'으로 결론 내린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0:56).
  1. 글씨체와 인장(도장)의 일치: 국내외에 남아 있는 박중양의 다른 친필 글씨들과 비교했을 때, 획을 처리하는 방식 등의 서체가 완벽히 일치했습니다 (1:08). 또한 작품 위쪽과 끝에 찍힌 낙관(도장)의 문구 역시 박중양이 개인적으로 소장하며 사용했던 인장과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1:08).
  2. '한인(韓人)'이라는 표현의 시대적 배경: 붓글씨에 사용된 '한인(韓人)'이라는 단어는 대한제국 시절 일본에 머물던 유학생들이 일본인들에게 '자신이 조선인(한국인)임을 밝힐 때' 주로 쓰던 표현이었습니다 (1:19). 실제로 박중양의 회고록에는 일본 유학 시절 휘호(글씨)를 써주고 유학 경비를 마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33).
  3. 박원근 지사의 생전 행적과의 불일치: 반면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독립운동가 박원근 지사는 일본에 간 적이 전혀 없었으며, 독립운동 과정에서 수차례 감옥에 갇혀 고초를 겪었기 때문에 해당 글씨를 남길 수 있는 물리적·시간적 정황이 맞지 않았습니다 (1:45).
박물관의 사과와 유족의 당부
  • 박물관의 대응: 국립중앙박물관은 소장 유물에 대한 철저한 검증 절차를 소홀히 하여 유족에게 큰 상처를 준 점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향후 소장품 검증 절차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59).
  • 유족의 눈물 어린 호소: 유족 측은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흔적이 친일파의 글씨였다는 사실에 참담함과 깊은 유감을 표했습니다 (1:59).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반드시 남아 있을 아버지의 '진짜' 흔적을 국가가 끝까지 찾아달라"**고 당부하여 주변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2:10).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 전시되었다가 친일파 박중양의 사진으로 밝혀져 철수된 붓글씨(유묵)에 담긴 글귀는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입니다. 
이 한자 문구의 구체적인 내용과 의미, 그리고 이 글귀가 전시에 선정되었던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한자 문구와 뜻
  • 한자: 一飯是國恩 (일반시국은)
  • 직역: "한 그릇의 밥(一飯)도 이 모두(是) 나라의 은혜(國恩)이다."
  • 속뜻: 우리가 매일 먹는 소박한 밥 한 끼조차도 온전히 국가가 베풀어 준 은혜이자 고마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백성으로서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감사하는 마음을 강조하는 깊은 유학적·국가관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2. 글귀의 역사적 배경과 전시 선정 이유
국립중앙박물관이 당초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을 기획하면서 이 글귀를 중요 전시품으로 낙점했던 데에는 특별한 역사적 가치가 있었습니다.
  • 의승병장 영규대사의 명언: 이 문구는 임진왜란 당시 승려들을 이끌고 가장 먼저 의병(승병)을 일으켰던 영규대사(?~1592)가 남긴 말로 전해집니다. 
  • 승병 모집의 명분: 왜군의 침략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영규대사는 동료 승려들에게 *"우리가 매일 먹는 이 한 그릇의 밥 또한 나라의 은혜인데, 어찌 가만히 앉아 바라만 보고 있겠는가"*라며 승병을 결성하고 격문을 띄울 때 이 글귀를 인용하여 참전을 독려했습니다.
  • 박물관의 의도: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인의 '식문화(K-푸드)의 원형과 역사'를 종합적으로 다루면서, 밥 한 그릇에 담긴 숭고한 역사적 의의와 문학적 표현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유묵을 전시에 포함시켰던 것입니다. 

 3. 밝혀진 이면과 씁쓸함
역사적으로는 항일 정신과 구국의 결의를 다지는 훌륭한 문구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글씨를 쓴 실제 인물은 후일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과 일본 제국의회 귀족원 의원을 지낸 거물급 친일파 박중양이었습니다. 
박중양은 청소년기에 《통감》이나 《맹자》 등 한문 고전을 깊게 익힌 인물이었으며, 대한제국기(1896~1903년) 일본 유학 시절 '박원근'이라는 본명으로 활동할 당시 일본 각지를 돌며 이처럼 그럴듯한 붓글씨(휘호)를 써서 팔아 유학 경비를 충당하곤 했습니다. 결국 그 시절 일본인에게 팔았거나 유통되었던 박중양의 붓글씨가 100여 년이 흘러 한국의 국립박물관에 독립운동가의 유품으로 잘못 흘러 들어오는 비극을 낳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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